일요일: 기술적 꿈
유럽은 왜 승리했는가? | 세계의 가속 함수란 무엇인가? | 문화를 위한 비즈니스 모델 | 소셜 네트워크에서의 인물 순위 | 시선을 통한 인터페이스 | 증강현실 사무실 | 주택과 인프라 프린팅 | 신경학적 진실 기계 | 인터넷 대신 브레인넷
저자: 안락의자 스타트업 전문가
- 중요한 질문: 유럽은 왜 승리했는가? 르네상스 시대에는 기술이 과학을 앞섰고, 이것이 과학 발전을 이끌었다 (과학이 기술을 이끌었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오늘날에는 기구가 발견보다 앞섰다는 것을 이해한다). 유럽은 우수한 기술적 장비 [중세 말기의 성과!] 덕분에 승리했지, 정신성 때문이 아니었다. 즉, 기술이 승리했지 유럽이 승리한 것이 아니다. 인쇄술, 증기기관, 망원경, 항해술 - 이들은 그 배후의 과학을 앞선 기술적 성과들이다. 하지만 유럽과 예를 들어 중국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기술이 과학과 문화 발전을 이끌었고, 기술이 만들어낸 정신이 성장하고 확장되어, 기술의 내재적 논리로부터 확장과 발견, 지배 [기술이란 세계 지배가 아니고 무엇인가?]와 확장하는 제국주의가 나왔다는 점이다 - 이것이 유럽을 밀어붙인 논리다. 즉, 기술만이 아니라 꿈이 차이였다 (기술과 꿈의 연결). 따라서 오늘날의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문화-과학적 발전을 이끌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중국인처럼 단순히 기술적이기만 해서는 안 되며, 단순한 사용자나 기술자가 아닌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기술적 꿈을 통해서다.
- 세계의 장기적 가속 함수는 무엇인가? 세계의 진보가 지수적인가, 즉 진보 자체에 대한 가속도가 있어서 우리의 실제 계산 능력이 지수적 [시간에 따라 증가]인가, 아니면 우리의 복잡성이 다항식적인가? 장기적으로 일정한 학습력을 고려할 때 [다른 것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 수십억 년 동안 그것들은 어디 있었는가? 그리고 자연에서 스스로 성장하는 힘이 어디 있는가?], 함수는 이차함수일 가능성이 높다. 가속도가 일정하고 속도만 증가하기 때문에, 역사를 통틀어 가속도는 항상 같아 보이며, 관점이 시간에 대해 불변이다: 역사의 모든 단계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며, 이에 대한 무수한 증거가 있지만, 오늘과 1년 전, 그리고 오늘부터 1년 후를 비교하면 거의 직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수적 성장은 어디 있었는가? 속도는 느낄 수 없고 가속도만 느낄 수 있다 - 이것이 상대성 이론이다. 그리고 앞으로 밀어붙이고 가속을 이끄는 힘은 무엇인가? 항상 한 걸음 앞서 있고, 메시아적 꿈처럼 역사의 끝에 앉아있지 않은 기술적 꿈이다.
- 문화를 위한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다 - 그렇지 않으면 문화는 죽을 것이다. 현재는 없다. 따라서 컴퓨팅 파워를 통한 지불이 필요하며, 이것이 다음 인본주의다. 문학을 위한 경제 모델 - 컴퓨터로 읽는 시간이 당신의 컴퓨터 프로세서가 작가에게 제공하는 시간이다.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복제된 모든 작품에도 마찬가지다. 이 컴퓨팅 파워는 가상화폐로 가치가 있거나, 슈퍼컴퓨터로 판매되는 실제 필요한 계산으로 가치가 있다. 즉, 당신의 컴퓨팅 파워를 신뢰할 수 있고 책임 있는 외부 기업에 전달하는 블랙박스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며, 이것이 문화를 구할 것이다. 이는 실제로 지갑을 열지 않고도 보편적인 소액 결제를 가능하게 하며, 실제 지불은 전기로 이루어진다. 전기 요금의 작은 부분이 구매한 자원 [컴퓨터]을 사용하면서 읽은 책에 대한 지불이 될 것이다. 이는 또한 세계의 컴퓨팅을 훨씬 더 높은 효율로 전환할 것이다. 이 지불 모델은 소프트웨어에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애플이 앱스토어를 열고 개발자들과 돈을 연결했을 때 소프트웨어의 번영이 시작되었다. 이런 지불 방식은 콘텐츠의 번영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시간은 돈이다라는 등식을 돈은 시간 [계산]이다로 바꿀 것이다. 돈의 본질은 계산 시간으로 이해될 것이며, 그러면 공급망의 각 단계에서 제품 비용이 증가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계산이 수행되기 때문이다 [관리도 계산이다].
- 소셜 네트워크와 웹사이트 네트워크 [현재 분리되어 있는] 사이의 통합이 필요하며, 웹사이트처럼 사람들에 대한 순위도 포함되어야 한다. 이는 대중문화 [사람의 양 대 질]에 대항하여 위계질서의 복원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특히 소셜 네트워크에서 사람들의 순위가 중요하며, 이를 통해 소셜 네트워크는 뉴런과 같이 될 것이다. 그러면 허브가 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편집자처럼 더 큰 대중에게 아이디어를 전달할 것이며 - 아이디어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한 게시물을 공유한]를 처음 보낸 사람이 헵의 법칙에 따라 순위가 올라갈 것이다. 문화에 대한 순위는 문화적, 사회적 위계질서를 재창조할 것이며, 이는 고급문화인 척하는 저급문화의 종말이 될 것이다. 허브에서 헵으로.
- 인터페이스가 더 친밀할수록 더 효율적이고 인간에게 더 내재적이 되며, 이것이 터치스크린 혁명이었고, 그 이전에는 시각적 운영체제 [윈도우], 또는 자유로운 언어로 검색하는 능력 [구글], 또는 개인용 컴퓨터 혁명 자체 [천공카드 대신]였다. 즉, 모든 큰 기업들과 혁명들은 인터페이스의 혁명이었다. 그리고 뇌에 직접 들어가기 전의 마지막이자 가장 친밀한 인터페이스는 눈이다. 화면에서 우리가 보는 것과 보는 방식에 따른 인터페이스 [예를 들어 화면 앞의 카메라로 우리 눈을 보는 것을 통해]를 처음으로 확립하는 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처럼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동공에는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 있는 것과 우리의 욕망에 대한 많은 정보가 있으며, 이는 손가락보다도 더 빠르고 효율적이며, 이를 기반으로 시스템 제어를 구축할 수 있다. 눈은 영혼의 거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터페이스에 가장 적합한 곳이 구글 글래스이기 때문에, 그러면 화면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사람이 무엇을 보는지도 알 수 있어서, 이를 증강현실과 결합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새로운 인터페이스에서 철학적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식과 의지, 그리고 제어의 융합일 것이다. 눈은 보고, 무엇이 끌리는지 보여주고, 실행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세 가지 별개의 기능이었다. What you see is what you get -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 당신이 얻는 것이다"로 가는 길이다. 즉, 여기에는 심신문제의 붕괴가 있는데, 외부에서 내부로 [인간이 내부에서 외부의 실제 세계를 인식하는 것] 가 아니라 내부에서 외부로 [외부 세계가 인간의 내면 세계에 의해 통제되는 것] 이다.
- 증강현실의 큰 약속은 집에서 일할 수 있는 증강현실 사무실이며, 우리의 사회적 뇌가 요구하는 인간적 접촉과 인간관계의 임계값을 원격으로 넘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술이 거기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래서 실제 사무실이 재택근무보다 더 효율적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면 대부분의 인구가 집에서 일하게 되어 교통체증, 오염, 인프라 붕괴가 해소되고 도시화의 이점이 사라질 것이다. 도시화에 대한 반대 경향이 생길 수 있다. 이것이 지구 온난화에 맞서는 지구의 기회다. 비즈니스 미팅 없이, 그리고 상품 운송이 아닌 이동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인간은 애완동물, 특히 고양이처럼 집에 머무는 존재가 될 것이다. 고양이들이 번성할 것이다.
- 로봇과 프린터-트럭에 의한 주택과 인프라, 도로의 프린팅은 이들의 상당한 비용 절감을 가능하게 할 것이며, 경제에서 가장 비싼 것이 훨씬 저렴해질 것이다. 제품 프린팅 혁명 이후에 생산은 농업처럼 될 것이며, 산업혁명이 농업혁명에 했던 것을 이것이 산업혁명에 할 것이다. 결과는 전체 물질세계의 상당한 비용 절감이 될 것이며 - 정신의 승리다.
- 뇌의 거짓말 탐지기가 나온 후에는 아무도 당국에 거짓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직책에서의 검사는 부패 없는 정부를 가능하게 할 것이며, 형사 사법 체계와 경찰력의 상당 부분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형사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뇌의 기능적 이미징으로 거짓말을 탐지할 수 있기 때문에 용의자에게 범죄를 저질렀는지 물어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또한 모든 도시 위에 드론 [아르고스 타입]이나 높은 막대를 설치하여 위에서 계속 촬영하고 [또는 움직임을 감지하는 도플러 레이더로] 영상을 저장하여 범죄를 소급하여 해결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범죄 현장에 도착한 차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고, 몇 달 전까지 그 경로를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파리 크기의 미니 드론도 감시 세계를 바꿀 것이며, 특히 정보 수집에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곤충이나 설치류나 새 크기의 드론을 만드는 데 성공할 필요는 없다. 곤충, 설치류, 새 자체를 사용하고 뇌의 쾌락 영역에 전극을 통해 통제하고 길들여서, 단지 카메라만 그들 위에 소형화하거나 심지어 그들 안에 이식하면 된다. 그러면 위장이 완벽할 것이다. 옛 범죄, 물리적 범죄의 죽음은, 사람들이 집에서 덜 나가고 모든 물리적 환경이 모니터링될 때, 범죄를 정신으로 이동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사이버 범죄 같은 것으로. 그리고 정체성과 돈 도둑질, 수치심 주기 같은 정신적 폭력은 물리적 폭력보다 훨씬 덜 폭력적이다.
- 마지막 단계는 인터넷 대신 브레인넷이 될 것이다. 처음에는 뇌 안의 연결을 다른 뇌들 사이의 연결로 모방하고 [예를 들어 뉴런 사이의 연결 메커니즘을 소셜 네트워크의 사람들 사이의 연결로 복사], 나중에는 뇌 안으로 점점 더 내면적인 연결이 될 것이다. 이것이 큰 일반적인 방향이다. 인공지능이 아니다. 사람들은 인공지능과 그것이 도달하는 속도에 대해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도착할 때쯤이면 이미 혁명이 아닐 것이다. 우리의 지능 자체가 이미 인공적이고 컴퓨터와 분리할 수 없이 통합되어 있을 것이며, 다른 뇌들과도 분리할 수 없이 통합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하나의 큰 복합체가 될 것이다. 하지만 개인으로서 그런 영역에 흡수되는 것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이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의 이상으로 인공지능을 상상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것이 아무리 위협적이라도, 적어도 우리처럼 개인이고, 따라서 아마도 적대적일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대처할 줄 아는 것이다. 우리가 그 안에 흡수되는 파트너와는 달리. 우리는 사랑보다 전쟁을, 사랑하는 이미지보다 적의 이미지를 선호한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남성과 여성의 차이일 수도 있다. 남성이 흡수되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 인간은 무엇이었는가? 수직적 진화에서 수평적 진화로의 전환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것으로의 회귀 [생명은 생식 없이 세포 간의 유전자 전달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유기체들의 인터넷. 두 번째 단계에서야 유전자 상속의 진화로 전환했다]. 더 이상 위에서 아래로의 유전선이 아니라 - 아버지에서 아들로, 학습을 통한 인간들 사이의 평행선이다. 모든 역사는 수직적 연결에 비해 수평적 연결의 점진적인 승리이며, 그래서 오늘날 인터넷이 출산을 없애고 있다. 그래서 역사에는 목적이 있다: 우리를 하나의 큰 뇌로 만드는 것. 정신적인 개미 종으로. 이것은 공상과학이 아니라 공상정신이다. 그러면 더 이상 전쟁이 아닌 고민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역사가 아닌 학습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