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력의 비평
칸트의 (가장 보수적인) 미학적 사상에 내재된 논란의 씨앗은 무엇인가? 왜 하필 가장 혁신적이지 않은 판단력 비판이 세 비판서 중 가장 심오한가? 칸트에게서 발견되는 아방가르드의 뿌리에 대하여
저자: 자유도가 너무 많음
현대 예술의 자의성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의 필연성과 칸트의 목적성 -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요소들 - 에 반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천재성이라는 신화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된다
(출처)칸트의 판단력 비판은 예술의 쇠퇴에 책임이 있다 - 예술을 기존의 판단 개념으로부터의 반복적인 일탈로 보는 관점에서. 그 최종적 결과는 20세기에 일어난 일이다. 아방가르드에 대한 피상적인 이야기와 세대를 거듭하며 매번 새로운 아름다움에 익숙해지는 과정, 그리고 새로운 것의 추함을 배경으로 한 과거의 저항으로부터의 각성이라는 맥락에서 극단까지 치달았다.
하지만 예술의 역사를 통해 반대되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키치나 구식으로 여겨지던 것에서 깊이를 발견하게 되는 각성의 이야기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저항이 아닌, 옛것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저항, 예를 들어 카라바조나 바흐, 부게로 등의 경우처럼. 인간은 동시대인의 위대함을 보기 어렵고, 오직 미래만이 과거의 위대함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대적 공간에서의 위대함은 정치적인 것이고, 시간 속의 위대함은 비정치적인 것 - 초시간적이거나 시간을 초월하거나 심지어 영원한 것이다. 따라서 시간 속의 위대함은 공간 속의 위대함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실제로 다른 차원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칸트의 실수는 판단력을 하필 미학적 방향으로 이끈 것이었다 (예술에서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철학자로서 "판단력 비판"에서 그는 오히려 미래를 보았고, 범주의 역동성과 희망할 수 있는 것, 즉 학습, 발전, 진화, 이성과 경험의 열린 측면을 확립했기 때문이다. 범주의 역동성은 또한 언어 철학으로 가는 문을 열었고, 단어들의 유연하고 문화적인 범주로 이어졌다.
키치에 대한 저항과 그 아름다움의 재발견이라는 이야기는 예술사의 중심적인 이야기이다. 그리스에 대한 저항과 르네상스에서의 재발견, 또는 바로크에 대한 저항과 그것의 재발견, 베르메르 등의 경우처럼. 아름다움은 잊혀지기 때문이다. 추함은 두드러진다. 만약 칸트가 판단력 비판 중간에 죽었다면, 우리는 그가 미학 분야에서 무엇을 이루어냈을지에 대한 숭고한 감각을 얻었을 것이고, 그 미완성은 창조적 영감을 불러일으켜 예술이 초월하도록 도전했을 것이다. 따라서 사상가가 작업을 완성하기 전에 죽은 것을 항상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괴테의 파우스트도 아마 결말이 없었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 어쨌든, 좋은 예술은 아름다움/숭고함/기타 등등의 범주에 있을 필요가 없고, 가르치는 것의 범주에 있어야 한다. 배우는 것의 범주일 수도 있다. 미학을 가르칠 수도 있지만 미학적 도구로 다른 것들을 가르칠 수도 있다. 좋은 예술과 나쁜 예술을 구분하는 것은 좋은 교사와 지루한 교사, 좋은 학생과 암기만 하는 학생의 차이와 같다. 학습은 미학의 기초이며, 이 점에서 칸트는 오히려 옳았지만, 방법론을 이해하는 데는 실패했다.
따라서 칸트는 피상적인 방법론을 만들었는데, 이는 외부적 목적이나 목표가 없는 진화 알고리즘과 비슷하여, 단순히 돌연변이를 통해 진행된다. 이 방법론의 논리를 확대하는 과정에서의 극단화는 예술의 잃어버린 세기 - 20세기를 초래했다. 방법론이 피상적일 때 - 늑대들이 들어온다. 기존의 판단 개념으로부터의 일탈이 무엇에 의해 일어나는지 불분명할 때 - 권력 투쟁과 제도만이 예술사를 만든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고, 이론은 자기실현적 예언이 되어버렸다. 기술적인 것과 규범적인 것 - 외부에서 설명할 수 있는 것과 내부에서 있어야 할 것 - 사이의 구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