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코렉트
아내의 밑에서 짓눌린다는 것이 너무나 흥분되어서, 나는 그녀가 나를 다시, 더 세게, 무겁게, 강하게 짓누르도록 자극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거대한 두 가슴으로 나를 질식시키고, 내 얼굴을 완전히 막아버림으로써 내 입을 막아주길 바란다. 오늘날 여성 아래에 있는 남성의 열등함과, 여성의 영적, 육체적, 성적 우월성을 느끼고 싶다. 이것이 나를 너무나 흥분시키는데, 특히 여성의 신체에 대한 권리가 완전히 실현되는 것이 그렇다
저자: 인구통계학적 위협
아랍인 태아. 아니, 유대인 태아. 아니, 독일인 태아
(출처)아내가 요즘 같은 시대에 아이를 낳는 것이 두렵다고 말하고 임신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꿈을 꾸었다. 이제는 더 이상 아이를 낳을 필요가 없고, 아이들은 환경에도 좋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우리를 위한 백업을 준비하러 간다. 독일 정부의 지원을 받아, 홀로코스트에서 죽은 쌍둥이 - 내 삼촌 둘을 복제하기로 했다. 일단은 그렇게 하자. 그러면 그녀가 나중에 마음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결국에는 아이를 원하게 될 테니 (내 아내이긴 하지만 여자니까,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그들을 키우면 된다. 그녀가 임신하지 않고도 부모가 될 수 있다. 나는 독일 관료제가 어떻게 나에게 이 둘을 키우도록 허락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그들을 알고 있고, 결국 그들이 어떻게 되는지도 알고 있으며, 그들은 홀로코스트에서 죽지 않았다. 하지만 좋은 유대인답게 나는 관료제와 논쟁하지 않는다. 특히 독일 관료제와는 더욱 그렇다. 실수가 내게 유리하다면 말이다. 독일인들이 실수를 한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그들의 실수를 지적하지는 않는다. 주면 받는 거다.
나는 덜 성공적인 쌍둥이, 기독교로 개종하고 가족과 단절한 그에게 가서 이야기한다. 미리 도와주려고, 그가 나쁜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한다. 그가 화를 잘 내고 불친절하다고 말한다. 아이-아기는 내가 하는 말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부드럽게 말한다: 화를 잘 내는 게 아니라, 고집이 세다는 거야. 너는 노새처럼 고집이 세서 멀리 갈 수 있을 거야. 내 삼촌처럼 (전생의 너처럼) 결국에는 위대한 과학자가 되었지만 은둔자이자 완전한 이방인이 되었잖아. 즉, 너에게는 잠재력이 있다는 거지. 그러자 그는 아기 얼굴로 매우 힘든 표정, 반항적인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에게 말한다. 이건 그저 유전자일 뿐이야, 네가 꼭 그렇게 될 필요는 없어. 하지만 나는 이미 그가 정말로 이것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되살린 것이 미안하다. 불쌍한 아이를, 신비주의에 능통한 그의 쌍둥이 형제인 성공적인 삼촌과 달리. 나는 왜 둘 다 되살렸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뭐야, 이게 패키지 딜이었나? 왜 좀 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들이 간신히 살아남았고, 수녀원에서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가 42년에 쌍둥이를 맡기고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독일인들은 아마도 그들이 죽었다고, 자신들이 그들을 죽였다고 생각해서 이 이상한 보조금을 승인해준 것 같다. 학살 희생자들을 가해자들의 책임 하에 복제로 되살리는 것이 세계적인 좌파 트렌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치적 올바름을 대체하고 있어서, 남부의 백인들은 노예로 죽은 흑인들을 키우고, 미국 서부에서는 모든 가정이 인디언을 키운다. 이 트렌드가 우리에게도 도달해서, 좌파들은 집에서 아랍인을 키우고 우파들은 우리가 아랍인들을 죽였다는 것이 거짓말이며 좌파가 이렇게 반유대주의와 데이르 야신[1948년 팔레스타인 마을 학살 사건]의 거짓 선전에 협력한다고 화를 낸다. 하지만 이제 나도 이 트렌드를 이용해서 정통파 유대교 가정에서 세속적인 아이들을, 세속적인 가정에서 정통파 유대교 아이들을 키우는 뻐꾸기 둥지 방식으로 - 특히 이 두 천재들을. 어쩌면 할머니의 두뇌를 가진 그들이, 나도 그런 두뇌를 물려받았지만, 21세기 초반의 아이들로서 그 두뇌를 활용해 내가 더 이상 할 수 없는 진정한 무언가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발전할 수 없는 곳에서 자랐으니까.
나는 아내에게 가서 말한다. 봐, 우리가 원하면 키울 수 있는 두 아이를 특가로 얻었어. 지금은 보육원에서 스스로 자라고 있어. 독일산 인큐베이터에서 (좋은 인큐베이터라는 걸 강조한다). 아내는 놀라서 말한다. 당신 미쳤어요? 뭘 한 거예요? 난 아이를 원하지 않았는데 이제 둘이나 생겼다고요? 나도 깨닫는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우리 아이들도 아닌데, 아이를 거의 원하지도 않는데, 우리 아이가 아닌 아이들을 키우고 싶지는 않을 텐데. 나는 그들을 독일 보육원에 남겨둔다. 괴테와 실러를 배우게 하자. 하이네도.
나는 침대에서 그녀의 배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아이를 키우는 게 왜 두려워? 그들은 유대인의 두뇌를 가졌잖아, 오늘날에도 뭔가 될 수 있을지 몰라. 그녀는 나를 침대 옆에 앉히고, 뭔가 침대에서 일어날 것 같았지만, 대신 나와 논쟁을 시작한다 (그녀도 유대인의 두뇌가 있고, 꿈에서 갑자기 뇌과학자가 되었거나, 적어도 유대인 어머니들을 위한 웹사이트에서 뇌에 대해 뭔가를 읽은 사람이 되었다): 오늘날 아이들의 뇌는 심각하게 손상되고 있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못 보겠어요? 이것은 신경학적 홀로코스트의 시작이에요. 20세기의 물리학 전쟁처럼요. 그때는 물리학이 20세기의 과학이었으니까요. 이제는 뇌과학의 전쟁이 될 거예요. 태아 때부터 안드로이드를 가진 아이가 어떤 영향을 받는지 이해 못하시나요? 그게 다음 단계예요. 임신 중인 엄마의 뱃속에서 발차기를 하지 않는 아이, 방해하지 않도록 양수 속에 스마트폰을 넣어주니까요. 출산할 때도 화면에 빠져서 울지도 않아요. 이게 미래의 아이예요. 집에서 괴물을 키우고 싶으세요?
나는 침대를 바라보며 말한다: 그래서 아이를 안 낳는다고요? 그래서 오히려 낳아야죠. 고기와 슈니첼과 배와 임신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그런 엄마가 되지 마세요. 당신은 모든 걸 거꾸로 보고 있어요. 뇌에 가장 좋은 건 미래에 기능해야 할 환경에서 자라는 거예요. 그래서 미성숙한 상태로 나와서 적응하는 거죠, 동물의 뇌와는 달리. 그래서 오늘날의 아이들은 컴퓨터 안에서 자라야 해요 - 어른이 되면 컴퓨터 안에서 살 테니까요. 우리는 컴퓨터에 들어가지 못할 광야 세대예요 - 느보 산에서 멀리 미래를 바라볼 수만 있죠. 그래서 더욱 - 우리가 새로운 땅을 위해 새로운 토라를 받는 세대가 되어야 해요. 이 새로운 공간이 미래의 약속의 땅이에요. 실제 땅이 아닌 가상의 땅이죠. 그래서 가나안 족으로부터 정복할 필요도 없고 대학살을 할 필요도 없어서, 모든 사람이 집에서 기르가스 족, 히위 족, 브리즈 족, 여부스 족을 키울 필요가 없는 거예요.
이제 나보다 훨씬 크고 강하고 뚱뚱한 아내가 침대에서 나에게 덤벼들어 매트리스에 눌러붙인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대신 (이게 나를 너무 흥분시키니까!), 그녀가 말한다: 내 배를 어떻게 할지 당신이 말하지 마세요. 내가 당신 머리를 어떻게 할지 말하지 않는 것처럼요. 내일까지 임신에 대해 꿈꾸세요. 슈퍼마켓에서 1+1로 홀로코스트 아이 둘을 사 오시네요. 할인 상품은 사지 말아야 한다는 걸 모르세요? 싸게 사는 게 결국 비싸게 먹힌다고요. 나는 말한다 (그녀에게 논쟁에서 지는 것이 매우 흥분된다): 이건 독일산이에요! 부족해요? 인류 역사상 독일 유대교보다 더 좋은 유대교가 있었나요? 아내가 나를 짓누르며 말한다: 당신 순진한 바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 못하세요? 그건 너무 좋았어요. 왜 독일인들이 그들을 다시 키우는지 이해 못하세요? 어떻게 모든 독일인이 집에 유대인 아이를 원하는지?
아내 밑에서 짓눌린다는 것이 너무나 흥분되어서, 나는 그녀가 나를 다시, 더 세게, 무겁게, 강하게 짓누르도록 자극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거대한 두 가슴으로 나를 질식시키고, 내 얼굴을 완전히 막아버림으로써 내 입을 막아주길 바란다. 오늘날 여성 아래에 있는 남성의 열등함과, 여성의 영적, 육체적, 성적 우월성을 느끼고 싶다. 이것이 나를 너무나 흥분시키는데, 특히 여성의 신체에 대한 권리가 완전히 실현되는 것이 그렇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완벽해지는데, 왜냐하면 그 와중에 밖에서 아랍 음악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아랍인들이 거대한 여성을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뚱뚱한 여자가 아름다운 여자이고, 원하는 만큼 먹을 권리가 있다!). 좌파 이웃의 아이에게 다시 움 쿨숨[이집트의 전설적인 여가수]을 크게 들려주고 있다. 그의 아랍 문화를 표현하게 하고 그를 전유하지 않기 위해서다. 세 살 때부터 어머니가 유대인이 되지 않도록 물담배를 먹인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나서 전 세계의 이 모든 아이들이 (독일인들은 갑자기 세계에서 가장 자녀가 많은 가정이 되었다. 산업적 복제에도 - 그리고 산업적 학살에도 - 능숙하니까), 성인식 나이가 되면 커밍아웃 의식을 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무슨 일을 당했는지, 그들의 부모가 그들에게 한 일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것을 듣는다. 그래서 이 모든 아이들이 부모를 미워하게 된다 (우파들의 환호 속에서). 하지만 부모들은 말한다. 미워하는 게 좋다, 그들의 분노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 집에서 물건을 부수고 형제자매를 때리고 어른들을 저주하는 것이 좋다 - 이것이 나와야 한다. 분노할 권리조차 빼앗는 사람은 - 그들의 자신과 유산을 빼앗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나쁜 부모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 자신을 위해 아이들을 키우는 - 나쁜 부모의 정확한 정의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우리를 미워한다는 것 - 그것이 우리가 훌륭한 부모라는 증거다.